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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기획 '비통한 세월'·(上)] 단명을 넘겨도… 발달장애인들의 어두운 앞날

김산
김산 기자 mountain@kyeongin.com
입력 2023-04-17 20:12 수정 2023-04-18 20:14

엄마 껌딱지 50대 딸… 노모 말고 돌봐줄 곳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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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장애인복지시설 '꿈자리보금자리'에서 마숙매(78)씨가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딸 박미자(51)씨를 지켜보고 있다. 2023.4.17 /김명년기자 kmn@kyeongin.com

26.5세. 최중증 발달장애로 분류되는 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사망연령이다. 발달장애인 전체 인구로 따지면 56.0세. 누군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 진출의 첫 꿈을 키울 나이이거나 사회생활을 마치고 안락한 노후를 고민할 즈음, 누군가의 생애는 삶의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그들이 왜 단명하는지, 왜 단명할 수밖에 없는지, 단명을 막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편집자주

연령제한에 막힌 보호시설 위탁
믿고 맡길만한 거주시설도 부재
최중증 자폐 평균 26.5세에 사망
오래 생존해도 책임은 가족들 몫


■ 단명 피했지만… '벼랑 끝' 7080 보호자들


'미자 씻기기, 미자 배웅하기, 미자 데려오기, 미자 재우기, 미자 씻기기…' 내일모레 여든을 앞둔 마숙매(78) 할머니의 지난 37년간 일과다. 이날도 다름없었다. 눈 뜨면 딸아이를 챙기고, 눈을 감아도 딸아이를 챙겼다. 챙겨야만 한다. 쉰 살을 갓 넘긴 중년 여성 박미자(51)씨지만 여전히 숙매씨의 보살핌 없이는 못 사는, 시꺼먼 속도 모른 채 방긋 미소를 보이는 '엄마 껌딱지' 둘째 딸일 뿐이다.

반에서 1~2등 하던 중학교 1학년 미자가 '갑자기 잠에 들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이었다. 손발이 굳고 초점이 없던 미자를 데리고 10년 가까이 매일 병원을 전전했다. 기적적으로 거동능력이 회복된 뒤로는 20년 넘도록 "미자를 살리기 위해서면 뭐든 다 해봤다"는 일상이 이어졌다.



진료비로만 집 한 채 값을 내놓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몰려도, 악성 암 종양 절제술로 목소리가 변할 지경을 겪어도 "이 안쓰러운 아이가 내 새끼인데,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어떻게든 미자를 살려냈던 숙매씨다.

야속한 건 시간이다. 낮 동안이라도 보호시설에 위탁 가능했던 연령이 지나자 근심이 깊어졌다. 임시로나마 주간보호서비스를 누리고 있지만 "이 생활이 얼마나 이어질지 걱정이 태산"이다. 숙매씨의 몸과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허리통증이 심해지면서 미자를 배웅한 뒤 수십 분씩은 병원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일흔을 앞둔 이혜자(69)씨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두 살 배기 아들이 마흔에 다다를 때까지 아들 박관희(39)씨를 보살피는 일과를 37년간 이어왔다. 유년기부터 사춘기 동안 또래의 괴롭힘, 스트레스성 자해, 갑작스런 실종사태까지 맞았던 지난 시절을 겪으며 "아직도 약을 먹으며 잠을 자야 하는" 관희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 낮 시간을 책임져주던 공교육의 그늘에서 어쩔 수 없이 벗어난 뒤로, 혜자씨는 관희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봤다. 지자체 주관 직업훈련시설 등 한시적 보호시설이 위탁 만료된 뒤로는 거주시설도 찾아봤다. 하지만 혜자씨가 마음 놓고 맡길 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 최소 9년, 최대 23년…발달장애인의 남은 '골든타임'


안타깝게도 가장 보통의 발달장애인은 평균적으로 23년 뒤, 정도가 심하면 9년 뒤면 비극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국립보훈처의 장애인 건강보건통계를 보면 2021년 발달장애인 평균연령은 33.0세, 사망시 평균연령은 56.0세다. 정도가 심한 것으로 분류되는 자폐성 장애인으로 한정하면 각각 17.8세, 26.5세다. 비장애인까지 포함한 통계청의 인구 평균연령(43.3세)과 기대수명(83.6세)과 비교해 보면, 인구 평균보다 절반 혹은 4분의 1 만큼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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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발달장애인을 단명으로 모는 가장 큰 요인은 다름 아닌 '사고사'였다. 같은 조사에서 자폐성 장애인 사망 원인의 1순위로 추락 등 낙상(10.9%)이 꼽혔다.

다른 장애 유형이 암 등 질병 요인이 1순위인 것과 달리 유일하게 사고사가 가장 높은 원인으로 나타났는데,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의 예측 불가능한 돌발 행동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사망 원인 2순위로는 '고의적 자해(자살·10.1%)'로 조사됐다. 24시간에 가까운 밀착 보호관리에 지쳐 스스로 삶을 비관하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가족구성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부모회 관계자는 "위험한 발달장애인 가정은 안 보이는 곳에서 홀로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 알아채기 어려워 부모들 사이의 우울증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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